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략 폭격/2차 대전 (문단 편집) ==== 결론 ==== 전략폭격은 적 내륙 깊숙한 곳에 있는 산업시설을 직접 점령하지 않고도 적의 군수물자 생산을 방해했다. 물론 통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러한 폭격의 직접적인 영향력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를 방어하느라 전선의 루프트바페가 차출되어 간접적으로 독일군의 제공권 형성을 방해하는 효과가 있었다. 이로 인해 독일군은 낮에 기동을 포기할 정도로 싸우기 힘들어졌으나 나치 독일의 전쟁경제는 끝까지 작동했고, 결국 독일의 산업이 붕괴한 것은 45년에 이르러 전선이 밀리며 '''산업시설이 점령된''' 이후였다. 당시 예산을 집행하고 있었던 [[알베르트 슈페어]]가 전략 폭격 때문에 산업에 큰 지장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했고, [[칼 되니츠]] 제독 또한 21식 U보트가 제때 투입되지 못한 것이 전략 폭격 때문이라는 언급을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지장을 주었을 뿐 폭격만으로 국민과 국가지도부의 전의를 꺾는다는 전략폭격의 기본 목표는 독일이 항복할 때까지 이루지 못했다.[* 반세기가 지난 [[걸프 전쟁]]과 [[코소보 분쟁]]에서도 공군력은 적군과 국가의 전력을 감소시켰을 뿐, 마무리를 위해서는 지상전력이 동원되어야만 했다.] 전략폭격은 대공포와 비슷한 점이 있다. 대공포 자체는 전투기를 단 한 대만 격추하더라도 대단한 전과가 될 정도로 직접적 성과가 없는 병기다. 하지만 대공포의 존재로 인해 전투기는 비효율적 작전 행동을 감수해야만 한다. 이게 쌓이고 쌓여서 전쟁의 향방에 영향력을 주는 것이다. 전략폭격 역시 전쟁수행능력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소모전의 도구로서 기능하며 독일을 고사상태로 몰아갔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전략폭격을 두고 "자국의 GDP를 집어던져 적국의 GDP를 파괴하는 전략"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공격측에서도 막대한 자원과 인력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전략폭격에 의해 발생한 대량의 민간인 사상은 어디까지나 당시의 미비한 폭격 명중율을 수량으로 보충한 결과였으며,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민간인을 죽이기 위해 폭격을 한 것은 아니다. 연합군은 [[영국 공군 617 비행대]]의 체스타이스 작전[* 흔히 말하는 '댐버스터'. '독일이라는 엔진에서 전기 플러그를 뽑아버리는' 작전이라고도 설명되었다.]에서 볼 수 있듯이 최대한 효율적으로 전략폭격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했다. [[드레스덴 폭격]]에서도 8회의 폭격 중 7회가 미8공군의 철도와 산업시설에 대한 폭격이었고 도심지 폭격은 영국 공군의 1회 뿐이었으며, 그 결과 영국 공군은 엄청나게 욕을 얻어먹었다. 폭격의 효율화를 위한 명중율 증진 노력은 지속적으로 수행되어 베트남전에서는 레이저 유도폭탄이 사용되었으며, F-117의 정밀폭격으로 표적의 40%를 격파한 걸프전을 거쳐 정밀유도무기를 대량으로 사용한 코소보 공습, 이라크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2차대전 당시의 기술수준으로 맞추기도 어렵고 잘 방비되어 있는 공업시설, 유전, 발전소, 댐, 항구, 교량 등을 막대한 자원소모와 희생을 감수하고 폭격하는 것보다 방어가 약한 철도나 도로의 중간점 수천 곳을 구석구석 반복적으로 파괴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으리라는 주장도 있지만 후대의 분석일 뿐, 당시의 분석능력으로는 어떤 방식이 더 효율적일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